좌절 대신 기회, 편마비를 딛고 무대에 선 보디빌더 이순호

PHYSIQUE NEWS2026년 1월 31일
좌절 대신 기회, 편마비를 딛고 무대에 선 보디빌더 이순호
2018년 11월 3일.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쓰러진 순간, 이순호의 인생은 멈춘 듯 보였다. 우측 뇌출혈, 그리고 왼쪽 편마비. 몸의 절반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걷는 것조차 힘들었고, 재활 치료만으로 하루를 버티는 삶. 움직임이 제한되니 체중은 늘었고, 마비된 근육은 점점 굳어갔다. ‘유지라도 하면 다행’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현실은 냉혹했다. 하지만 그는 그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끝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좌절 대신 기회를 택했다. 처음 시작한 건 수중 재활이었다. 물속에서는 몸이 조금 더 자유로웠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장애인 수영을 시작했고, ‘국가대표’라는 꿈도 품었다. 하지만 한 팔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다음으로 탁구에 도전했다. 군 시절 탁구 실력이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열심히 연습해 첫 대회에 나갔지만 결과는 참패. 그날 그는 깨달았다. 장애인 국가대표 역시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포기 대신 선택한 건 ‘계속하는 것’이었다. 수영도, 탁구도 재활의 일부로 꾸준히 이어갔다. 전환점은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한쪽 몸만 쓰면 더 망가질 거라 생각해 두려웠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달랐다. 근육이 붙고 체력이 올라가자 몸이 더 안정됐다. 식단까지 병행하자 체중은 줄고 근육은 살아났다. 장애 이전보다 더 좋은 몸. 그는 그때 처음 느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 재활을 위해 시작한 운동은 어느새 ‘보디빌딩’이라는 새로운 꿈으로 바뀌었다. 바디프로필 촬영 후, 그는 결심했다. “무대에 한번 서보자.” 2023년, 편마비 선수 최초로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했다. 비장애 선수들과 같은 무대, 같은 규정, 같은 심사. 결과는 보디빌딩 2위, 스포츠모델 3위. 동정이나 배려가 아닌, 실력으로 얻은 성적이었다. 그 순간 그는 확신했다. 이 길이 자신의 길이라는 것을. 이후에도 수영, 탁구, 육상, 웨이트를 병행하며 몸을 단련했고, 포징 레슨과 PT까지 받으며 선수로서 완성도를 높여갔다. 장애인이라는 한계 대신 ‘선수’라는 정체성이 자리 잡았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대회 준비 도중 갑상선암 진단. 보통 사람이라면 무너질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저에겐 두려움이 아니라, 더 큰 동기부여였어요.” 수술을 미루고 끝까지 무대 준비에 집중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그는 더 이상 ‘장애인 선수’가 아니었다. 그저 멋진 몸을 가진 한 명의 보디빌더였다. 특히 WNGP 무대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오직 몸과 노력으로만 평가하는 공정한 심사. 선수 한 명 한 명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태도. 그는 그 자리에서 확신했다. “여기라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진짜 하나가 될 수 있겠다.” 그리고 그의 작은 목소리는 현실이 됐다. 단체는 결국 ‘장애인 종목’을 신설했고, 그는 공로상까지 받았다. 혼자 싸우는 길이라 생각했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었고, 길이 없던 곳에 길이 만들어졌다. 뇌출혈, 편마비, 그리고 암. 세 번의 시련을 겪고도 그는 여전히 말한다. “아직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이순호는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단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도, 오른팔 하나로 바벨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한계를 다시 쓰고 있다.